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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은 그분들과 점심"... 투명인간 놓지 않은 노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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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아리성
작성일20-12-17 19:15 조회5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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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하면 떠오르는 것, 여덟 장면: 기록으로 톺아보기 ④-2 : 6411번 버스

노회찬재단은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과 함께 공동기획으로 12월 7일부터 31일까지 4주 동안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에 8편의 이야기 글('노회찬하면 떠오르는 것' 여덟 장면: 기록으로 톺아보기)을 선보인다. <편집자말>

[조현연 기자]

 6411번 버스 '투명인간'과 노회찬.
ⓒ 노회찬재단

 
[지난 기사] 왜 노회찬은 6411 버스를 탔을까, 여태 몰랐던 이야기 에서 이어집니다. 

'서울 25시, 새벽을 여는 사람들'

새벽첫차를 타기 하루 전날인 2010년 4월 12일 진보신당 서울시장 예비후보 노회찬 선본 캠프에서 주간사업 점검회의가 열렸다. 회의에선 기획사업으로 대 시민 선거운동 본격 재개로 ① '(가칭)서울 25시, 새벽을 여는 사람들'(4.13~4.16) ② 노회찬의 친환경 무상급식 올레(4.13/4.16) ③ 여의도 윤중로 벚꽃(축제) 시민과 함께 사진찍기(4.17) ④ 한강운하 반대, 한강 생태복원을 위한 노회찬과 함께 하는 시민 올레(4.18) 등을 점검했다. 

이 가운데 첫 번째 '(가칭)서울 25시, 새벽을 여는 사람들'의 경우, '첫차를 타는 청소용역 노동자(4.13)' '새벽을 여는 가스충전소 택시기사(4.15)' '노량진 취업학원에서 만난 취업생의 하루(4.16)'로 진행됐으며, 방식은 '현장 방문+인터뷰 및 간담회+소감&정책대안 제시'였다.

'새벽을 여는 사람들'이라는 명칭은 고향인 부산 자갈치 시장과 남포동을 배경으로 한 박봉성 화백의 두 번째 장편만화 <새벽을 여는 사람들>(1985, 총 27권)에서 빌려온 것이었다. 어시장의 활기차고 정의로운 사람들의 애환과 모든 것을 잃고 빈털터리가 된 주인공 최강타의 좌충우돌 이야기. 잡다한 일을 통해 어판장의 생리를 배우며 경매인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에서 독점을 노리는 투기꾼들의 음모를 알게 되고 이들에 맞서 어판장을 지킨다는 내용이다. 

노회찬의 회고에 따르면, 중학교 입시준비를 위해 초등학교 4학년(1966년) 때 늘 가던 만화방에 발걸음을 끊었다. 그러다가 1980년대 수배생활 당시 도망다닐 때 "갈 데 없으면 500원이면 밤새 보면서 라면 하나 끓여먹고" 했다곤 한다. 당시 재미있게 본 만화가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 허영만의 <오! 한강> 그리고 박봉성의 만화였다고 하는데, 아마도 이무렵 박봉성의 <새벽을 여는 사람들>을 접하지 않았을까 여겨진다.
 
 만화 '새벽을 여는 사람들'.
ⓒ 봉성닷컴

 
인민노련 사건으로 구속된 노회찬은 1992년 4월 1일 청주교도소에서 만기출소했다. 그리고 생계 대책의 한 방편으로 1993년 인천에서 '책꾸러기'라는 책 대여점을 열기도 했다. 수배 때가 아니라면 이때 봤을 수도 있겠다. 

"과거에 제가 공장이라도 다닐 때는 월급이라도 받았으니까 괜찮았는데, 처가 자기가 벌겠다, 장사를 하겠다, 그래서 책 대여점을 하겠다 해서 93년도에 '책꾸러기'라는 대여점을 열었어요. 아침에 문 열어서 밤 12시까지 가게 문 열어야 하는데, 처도 식사도 하고 쉬어야 되고 하니까 저녁에 틈만 나면 가서 가게를 봤죠. 일요일은 하루종일 봤지요. 한 사람 인건비 정도 나오더라고요. 3년 정도 했습니다. 인천에서 서울로 오기 전까지 했으니까요." (김어준, '회찬씨, 농담도 잘하셔', <진보의 재탄생>, 꾸리에, 2010).

'반MB 후보단일화 선거연대', 격랑 속의 고군분투
 
 2010년 6.2 지방선거 진보신당 서울시장 후보였던 노회찬.
ⓒ 진보신당

 
2010년 '반MB 후보단일화 선거연대'라는 거친 바람과 파도 속에서 진보신당을 대표해 고군분투했던 노회찬의 서울시장 선거 성적표는 예상보다 많이 초라했다. 노회찬의 지지율은 2009년 말 여론조사에서 10%를 상회하기도 했지만, 예비선거운동 기간과 본 선거운동을 거치면서 오히려 계속 하락했고 결국 3.26% 득표율에 그쳤다. 
    
서울시장 선거 결과와 과정에 대한 아쉬움을 김현우(진보신당 정책위원)는 이렇게 토로했다('진보진영의 정계개편이 필요하다: [6.2선거를 말한다](4) 2010년 지방선거와 진보신당', <참세상>, 2010.6.4). 

"어쩌면 애초 노회찬 후보의 캐릭터와 포지션이 서울시장 후보와 썩 맞지 않았던 점도 있다. 그러나 이미 결정된 것이라면 시장 선거 기간 동안 노 후보는 전국적 인기정치인 대신 철저히 '서울시장 후보 노회찬'이 되었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고, 유권자들도 이를 느끼고 있었다. 결국 서울 시민들은 인기 정치인 노회찬을 인정하고 좋아하지만, 진보 서울시장 후보로서의 절박함은 공유하지 못했다. 선거 막판으로 갈수록 (민주당 한명숙 후보의) '반MB의 절박함'을 이길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모호함은 서울시장 선본의 전략 운용에도 이어졌다. 예비후보 선거운동 기간에 노회찬 후보가 외견상으로 가장 열심히 했던 것은 지하철역 아침인사였다. 앞서 말했듯이, 노회찬 후보의 인지도가 문제가 아닌데 이런 방식의 선거운동은 역량 낭비였다. 그보다는 진보적 지방정치와 서울의 이슈를 만들고 찾아다니는 기획이 필요했던 시기였다. 물론 그러한 활동이 큰 득표를 보장하지는 못하지만, 막판 뒷심으로 작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진보신당이 처한 상황은 안팎으로 많이 어려웠다. '반MB 후보단일화 선거연대'의 후보단일화 압박이라는 격랑이 외부 악조건이었다면, 당 내부에서는 광역자치단체장 후보들의 줄사퇴가 이어졌다. 이유는 달랐지만, 김석준 부산시장 후보와 이용길 충남도지사 후보에 이어 막판에는 심상정 경기도지사 후보가 잇따라 주저앉았다. 선거 결과 진보신당은 광역의원 3명, 기초의원 22명을 배출했다. 
 
 2010년 5월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건강연대 대회의실에서 친환경무상급식풀뿌리국민연대 주최로 열린 '친환경무상급식 서명 발표 및 수도권 후보와 함께 하는 시민정책요구안 전달식'에서 당시 한명숙 민주당 서울시장후보가 노회찬 진보신당 서울시장후보에게 말을 건네고 있는 모습.
ⓒ 권우성

 
서울시장 선거가 전혀 예상 밖으로 초박빙 접전 끝에 오세훈 후보(한나라당)가 한명숙 후보(민주당)를 누르고 승리하자, 두 후보의 표차(2만6000표)보다 많은 14만3000여 표를 얻은 노회찬에게 온갖 비난이 쏟아졌다. 노회찬은 그것을 홀로 감당해야만 했다. 따지고 보면 한명숙 후보의 패배는 노회찬 탓이 아니라 한명숙 후보와 선본, 민주당 측의 문제 때문이었음에도 말이다. 

이틀 뒤인 6월 4일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노회찬은 자신이 한명숙 후보와의 단일화를 거부해 한나라당에 승리를 안겨줬다는 비판에 대해 "내 지지자들은 대부분 '이번 선거만큼은 미안하지만 저쪽(한명숙 쪽) 찍겠다'고 내놓고 얘기하는 상황이었다.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식으로 가는 건 사실관계도 다르고 적합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민주당 구청장 후보를 찍은 유권자 중 상당수가 정작 한명숙 서울시장 후보는 선택하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했다. "한명숙 후보가 2만6000여 표 차이로 졌는데, 강동구 같은 경우 민주당 구청장 후보가 얻은 표가 한명숙 서울시장 후보 표보다 3만 표 더 많다. 민주당 구청장 후보들이 얻은 표만 (한 후보가) 얻었어도 이겼을 것이다." 그는 또 단일화 무산 책임이 자신에게도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한 후보 쪽도 단일화를 위해 협상하자는 제안이 일체 없었다"며 "굳이 책임을 따지자면 힘이 더 있는 쪽의 책임이 크지 않겠나"고 밝히기도 했다.

2010년 10월 15일. 6.2지방선거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고 약속한 노회찬 및 당 지도부는 '당이 직면한 중요한 과제들을 책임있게 매듭짓는' 마지막 임무를 마무리짓고 총사퇴했다. 평당원으로 돌아가기 전 당대표로서 노회찬의 마지막 일정은 당사가 입주한 건물 청소용역 노동자들과의 점심식사였다. 

노회찬은 트위터에 "저는 오늘 물러납니다. 진보신당 대표로서 마지막 공식일정은 당사가 입주한 건물 청소용역 아주머니들과의 점심식사입니다. 늘 곁에서 수고하시지만 투명인간처럼 존재를 무시당하는 분들과 늘 함께하겠습니다"라고 글을 남긴다.
 
 2010년 10월 15일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 마지막 일정은 당사 입주 건물 청소노동자들과의 점심식사였다.
ⓒ 노회찬재단

 
노회찬은 퇴임사에서 힘줘 말한다.

"오늘로서 만 18년 간 하루도 쉬지 않고 무거운 직책을 맡았던 과거로부터 결별하게 되었다. 그동안의 많은 어려운 일들이 적지 않았음에도 진보신당 전체 당원들의 당에 대한 뜨거운 애정 때문에 한 시도 외로운 적은 없었고 힘들어도 절망한 적은 없었다. 작금의 상황은 사회양극화라는 말로 상징되는 여러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으나 나는 새롭게 출범하는 지도부가 진정으로 진보정당이 정답이고 진보정당만이 희망이라는 것을 확실히 각인시켜줄 수 있다고 믿는다." 

이어서 이렇게 말을 맺는다.

"나는 평당원으로 돌아가지만 할 일이 태산 같다. 많은 당원들과 더불어 더 낮은 곳에서 당의 뿌리를 키우는 데 노력할 것으로 나무가 가장 혹독한 시기를 거치며 만든 나이테가 다른 쪽보다 더 단단하듯 진보신당이 경과하는 어려운 시기는 진보신당이 강한 정당으로 거듭나 한국정치를 바꾸고 진보정치의 새 지평을 여는 선구자가 될 것으로 믿는다." 

2년 뒤인 2012년 10월 21일, 19대 총선(4.11.)에서 재선에 성공한 노회찬은 진보정의당 당대표로 취임하면서 그동안 잊혔던 '6411번 새벽 첫차'를 다시 불러내는 '감동'의 연설을 한다. 선거기획으로는 비록 '실패'였는지 모르겠지만, 노회찬 가슴 깊은 곳에 6411번 버스는 계속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떠난, 그 이후: "노회찬의 약속은 아직 미완성"

2010년 4월 13일 노회찬이 탔던 6411번 새벽첫차는 여전히 노동자의 고단한 삶을 싣고 새벽길을 달린다. 서울시내만 해도 이런 버스가 한두 대가 아니다. 

노회찬이 떠난 뒤 하나의 상징이 된 6411번 버스를 타면서 이야기를 주고받는 기자, 정치인들이 꽤 많았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새벽 버스 증차된다는데, 언론에 주구장창 나온 우리 노선은 왜 안 바뀌는 건지, 급행 노선이나 제발 만들어주면 좋겠어요. 박원순 서울시장님이나 문재인 대통령님이 한번 타보면 바로 알 텐데…'라고 입을 모았다."(동아일보, 2019.7.24.)

2019년 서울시는 6월 10일부터 새벽 만원버스를 줄이기 위해 146번, 160번, 240번, 504번 등 4개 노선 첫차 배차를 늘렸다. '6411번 노회찬 버스'는 혼잡한 정류장이 적다는 이유로 제외됐다.

"'(노회찬 의원) 돌아가셨을 때 얼마나 (언론을) 탔어요. 날마다, 방송국마다. 그런데 하나도 변한 게 없지."

단지 혼잡한 6411번 새벽첫차만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한국 정치판에... 그런 사람이 또 나올까?' 한참이 지나서야 70대인 윤모씨가 긴 한숨과 함께 노 전 의원에 대한 그리움을 내뱉었다."(동아일보, 2019.7.24.)

노회찬은 '투명인간들을 위한 정치'를 다짐했고 그것을 국회 안팎에서 실천했다. 물론 노회찬의 투명인간들이 청소노동자들만은 아니었다. "대한민국을 실제로 움직여 온 수많은" 노동자와 서민들 모두를 뜻하는 것이며, 목소리를 빼앗긴 이 땅의 모든 사회 약자들을 가리킨 것이었다.  

그것은 노회찬이 의정활동을 하면서 늘 가슴에 새겨둔 경구인, 신영복 선생의 '함께맞는비'가 말하려는 것과 같았다.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입니다.' 노회찬은 "국회의원으로 갖고 있는 많은 우산 중 하나를 씌워주는 데서 끝나지 말고 동고동락하는 자세로 현장에서 같이 비를 맞으며 아픔을 느낄 수 있는 의원이 되라는 가르침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노회찬은 '6411번 버스와 투명인간'으로 상징되는, 가장 낮은 곳에 서 있는 사람들과 함께 비를 맞으려 애썼다. 
 
 2007년 8월 '오마이뉴스'와 인터뷰 중인 노회찬 민주노동당 대선예비후보. 그의 뒤로 신영복의 '함께맞는비' 글귀가 보인다.
ⓒ 이종호

   
6411번 버스 투명인간들에 대한 노회찬의 약속은 의정활동으로, 특히 입법 발의에서 잘 드러난다. 법안 발의는 국회의원이 초심을 얼마나 잊지 않았는지 살펴보는 가늠자라고 할 수 있다. 법안은 국회의원과 소속 정당이 꿈꾸는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3선 의원 노회찬이 7여년의 의정활동을 통해 발의한 1029건(대표발의 127건)의 의안(법안, 결의안, 국회규칙)은 많은 경우 사회 약자와 소수자에게 피도 눈물도 없는 법 조항에 사람의 온기를 불어넣으려 한 시도였다. 그가 발의한 법안에는 민주노동당으로 시작한 진보정당의 역사와 진보정치인 노회찬이 꿈꾼 세상이 담겨 있기도 하다(<한겨레21>, 제1223호, 2018.7.30.).

2018년 7월 23일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난 노회찬. 그가 떠난 뒤, 투명인간들과 함께 하기로 한 노회찬의 약속과 꿈은 어느 정도 이뤄져 왔을까? 

"수많은 투명인간을 위해 정치가 존재해야 한다던 노회찬의 꿈. 여전히 미완성입니다."는 KBS 9시뉴스(2019.7.21.) 김연주 기자의 목소리가 여전히 귓가를 가르며 가슴으로 파고든다(https://youtu.be/O2MS0jWtOTA).
 
 KBS 9시뉴스(2019.7.21.) 화면 갈무리.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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